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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며느리의 지혜

죤댈리 2013. 4. 26. 22:06

 


 

 

 

◈ 며느리의 지혜

 

월출산 산마루에 붉은 노을이 물들 무렵.
드넓은 절터 한복판에 한 노인이 흰 수염을 날리며
못박힌 듯 망연히 서 있었다.
간혹 깊은 한숨을 몰아쉬면서...
발 아래 널려 있는 서까래를 번쩍 세워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아주 정중하게 다시 눕힌 후 자로 재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다. 아무래도 짧으니 알 수 없는 일이로구나.’
노인은 중얼거리며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때는 신라 말엽.
왕은 날로 기우는 국운을 걱정하여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 기슭에 99칸의 대찰을 세우도록 명했다.
이때 서까래를 맡은 목공은 대목(大木) 사보라 노인이었다.
팔순이 넘은 노인은 이 불사를 필생의 작업으로 삼아
온 정성을 다해 나무를 깎고 다듬었다.
젊은 목수의 도움도 마다하고 5백 개의 서까래가 상량을
며칠 앞두고 다 깎여졌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낱낱이 자로 재면서 깎은 서까래가
도면보다 짧게 끊겨져 있었다.
노인은 절망을 되씹었다.


‘80평생 나무와 함께 늙어온 내가 이제 평생을 건
마지막 공사에 실수를 하다니...’
국수(國手)의 말을 듣는 자신의 명예가 땅에 떨어져
비참해지는 것을 눈앞에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서 있는 나무만 보아도 나무의 나이를 알았고,
껍질 속이 얼마나 굳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사보라 노인에게 있어 집짓는 일은 창조의 희열을 동반하는
예술이며 삶의 보람이었다.
노인은 절망의 밑바닥에서 안간힘을 썼다.
‘다시 시작해야지!’


그러나 노인은 다시 자리에 눕고 말았다.
“아버님, 저녁 진지 드셔요. 약도 안 잡수셨군요.”
“아니다. 생각이 없다. 상을 물리려므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지요.
며칠째 자리를 걷지 않으시니 염려가 크옵니다.”
“네 탓도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내 잘못이니 심려치 말아라.”
“아버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하옵니다.
혹시 저의 미약한 지혜라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오니
어서 사연을 말씀해 주십시오.”


노인은 며느리의 간곡한 청에 못이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며느리는 아무 기색없이 물러나와 마당에 섰다.
그때 며느리의 눈앞에 이상한 것이 비쳤다.
한 줄로 가지런한 서까래가 두 줄로 보였다.
처마 밑으로 바짝 다가가서 보니 다시 한 줄.
며느리는 비로소 깨달았다.
집안과 바깥 불빛이 어우러져 그림자가 그렇게 보인 것이었다.
순간 며느리는 시아버님께 뛰어갔다.


“아버님, 서까래가 짧게 다듬어졌다 하셨지요?”
“그래, 그렇다만 아기 네가 갑자기 웬일이냐.”
“다름 아니오라 짧은 서까래에 다른 서까래를 겹쳐 대면
더 웅장하고 튼튼하지 않겠습니까, 아버님.”
노인은 엷은 흥분이 전신에 생기를 돋구었다.
“그렇구나, 아가야. 부연(附延)하면 된다.
 부연한 그 지붕의 멋을 감히 누가 흉내낼 수 있겠느냐.
어서 채비를 차려라.”
이리하여 세워진 도갑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연식(附延式) 지붕 건물이 되었다.


도갑사는 75년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79년 옛모습 그대로 다시 중창되었으며
현재 문화재 자료 79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 산들마을 분수대
글쓴이 : 분수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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