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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황룡사 9층목탑과 아비지 이야기

죤댈리 2013. 6. 1. 23:26

 

 

 

◈황룡사 9층목탑과 아비지 이야기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다.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 자장율사는 태화지를 지나다
갑자기 나타난 신인을 만나 법을 전해 받았다.
“지금 그대의 나라는 여자를 왕으로 삼았으므로 덕은 있어도
위엄이 없소. 때문에 이웃나라에서 침략을 도모하고 있으니

그대는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시오.”
“돌아가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요?”
“황룡사 호법룡은 나의 장자로서 범왕의 명을 받아 그 절을
보호하고 있으니 본국에 돌아가 그 절에 9층탑을 세우면
이웃나라가 항복하고 조공을 바치며 왕업이 길이 태평할 것이오.”
신인은 말을 마친 후 홀연히 사라졌다.


선덕여왕 12년(643), 당나라 황제로부터 불경, 불상, 가사 등을
받아가지고 귀국한 자장율사는 즉시 왕에게 아뢰었다.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시면 외국의 침략을 막을 뿐 아니라
이 나라 백성들이 안녕을 누릴 것이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신하들은 한결같이 조각계의 명장(名匠)으로

소문난 백제의 아비지를 데려다 탑을 조성하자고 말했다.
대탑 조성을 위해 초청을 받은 아비지는 내심 즐거웠다.


사비성을 떠나 서라벌에 도착한 아비지는 이간(신라17관등의 제2위)
용춘이 거느린 소장(小匠) 2백 여 명과 함께 탑 불사에 들어갔다.
두 달후 황룡사 법당 앞에는 커다란 탑주가 세워졌다.
그날 밤 아비지는 백제가 멸망하는 꿈을 꾸었다.
꿈자리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한 아비지는 백제로 도망칠
결심을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노스님 한 분과 키가 구척이나 되는
장수가 홀연히 나타나더니 자기가 세운 탑주와 똑같은 탑주를
순식간에 세웠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그들은 온데간데 없었다.


이는 부처님께서 날보고 탑불사를 계속하라는

계시로 생각하고 다시 일에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비지의 가슴에 또 하나의 파문이 일었다.
1층은 일본, 2층은 중화(중화), 3층 오월(오월),
4층 탁라(탁라), 5층 응유(응유), 6층 말갈,
7층 단원(단원), 8층 여적(여적), 9층은 백제와 고구려를
상징하며 이들 나라는 항복하고 신라에 조공을 바친다고 했다.
일터에서 인부들이 주고받는 말을 무심히 듣게 된 아비지는
그 동안의 수수께끼가 풀리면서 더이상 탑을 조성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몸져누워 생병을 앓았다.
아비지에게 사모의 정을 품은 채 늘 가슴만 조이던 용춘의 딸 아미는
아비지의 방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정성껏 간병했다.


“낭자! 낭자는 9층탑을 세우는 이유를 자세히 알고 있지요?”
“소녀, 아무것도 모르옵니다.”
“그대 역시 신라의 여인이구려.”
아미 낭자는 가슴이 아팠으나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며칠간 병석에서 번민한 아비지는 모든 것을 부처님의 뜻으로
돌리고 탑불사에 전력, 총높이 225척의 거대한 탑을 완성했다.
찬란한 햇살 속에 새로 탄생된 신라의 보물을 바라보는 아비지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는 무슨 생각에선지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춘 그는 은빛 햇살이
반짝이는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소리에 뒤이어 또 하나의 「풍덩」소리가 들렸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아비지를 따르던 아미 낭자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른 것이다.
신라는 이 탑을 세운 뒤 삼국을 통일했고 황룡사 9층탑은
신라의 3대 보물 중의 하나가 됐다.

 

 


 

출처 : 산들마을 분수대
글쓴이 : 분수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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